덕산그룹 이수훈 회장
덕산그룹 이수훈 회장

| 다소 늦었지만, 작년 12월 덕산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회장님의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덕산그룹에서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수훈입니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교 역사교육학과 98학번이고, 국제대학원 국제통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을 했지만 퇴사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덕산하이메탈’이라는 작은 상장사에서 해외 영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매출액이 180억 정도 되는 작은 회사였지만, 20년 정도 근무를 한 지금은 약 5~6천억 정도의 매출액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 덕산그룹만의 특징이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덕산그룹의 장점은 '젊은 기업'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저희는 2005년도에 ‘덕산하이메탈’이라는 회사, 그 당시 최초로 순수 반도체 소재 업체로 상장을 했습니다. 지금 정부에서 얘기하는 소부장1) 소재 부품과 같은 것에 있어서 1세대 기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기술 관련 제조 업체들 위주로 확장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희 덕산그룹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또 다른 영역의 소재 쪽으로 확장을 하고 있습니다. 역동적으로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젊은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회장님께서 덕산그룹을 ‘젊은 기업’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지난 2023년 6월 한덕수 총리가 ‘덕산네오룩스’를 방문했고, ‘청년 친화 강소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덕산그룹 혹은 이수훈 회장님께서 기업 경영을 하면서 청년에게 주목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청년을 위해 무엇을 더 배려 하고자 노력하시는지요. 회사의 청년 친화적 요소는 무엇인지 궁급합니다.

  제가 청년에 주목하는 이유는 덕산그룹을 100년 이상 지속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사를 10~20년 경영하고, 매각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현재 저희 그룹의 역사가 30~40년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중견기업들이 성장을 하다가도 실패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 때문입니다. 저는 덕산을 100년 이상의 기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청년과 청년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덕산그룹은 계열사가 생길 때마다 공간이 허락된다면 무조건 운동시설을 만들게 하고, 동아리 활동을 적극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 대표적으로 복지 측면에서도, 세 자녀를 낳을 경우에는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효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웃음) 또 청년들의 생각은 다르니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희는 더 청년들을 모으고 싶고, 같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제가 회장에 취임하고부터는 가능하면 젊은 친구들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이수훈 회장 / 사진=남지선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이수훈 회장 / 사진=남지선

| 회장님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시고, 국제대학원 국제통상학 석사를 졸업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이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두 학문이 회장님의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일단 역사가 넓은 시야를 가지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덕산그룹 같은 경우는 기술 관련 기업이라 다른 산업보다 변동이 심합니다. 그런데 역사를 배운 입장에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다른 산업들을 벤치마킹하고, 장기적 측면에서 산업 리스크를 점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와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요. 요즘에는 청년들이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단기간의 이익 때문에 결정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큰 틀에서 보면 사실 그건 이익이 아니거든요. 그냥 올라갔다 내려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이렇게 거시적으로 그래프를 보는 눈이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제통상학은 석사 논문도 반도체와 관련해서 썼다 보니, 아무래도 반도체 산업을 특화할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이런 부분이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회장님께서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셨지만 경영인의 길을 걸어가신 것도 학생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길 외에는 안 돼”라고 생각하는 좁은 시각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선후배들 중에서도 교육계 혹은 교직에 있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고,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상상 외의 직종에 많이 계세요. 사범대 혹은 역사교육에 자신의 가능성을 국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고, 자신의 발전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회장님께서는 언제부터 경영에 관심 있었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경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웃음) 아버지께서 2004~2005년쯤, 코스닥에 상장을 하실 때 전화를 하셔서 “야, 아버지 회사 상장한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저도 그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기 때문에 “축하합니다”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웃음) 서로에게 그 정도로 관심이 없었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길을 가고 싶었어요. 아버지처럼 살기가 싫었는데, 살다 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없는 게 인생이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인생이더라고요. 그렇게 의도와 달리, 계속 이 길을 오게 된 것 같습니다. 회사 경영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단 책임감으로 경영을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 회장님만의 특별한 경영 철학이 있으시다면요?

  첫 번째는 사람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경영에 관심이 있었고 미리 준비를 했다면 이렇지는 않을 텐데, 저는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서 한계를 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리더십 중에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있잖아요. 조직도를 그리면 가운데에 리더가 있고 나머지 전부가 리더에게 보고를 하고, 모든 의사 결정은 리더가 하는… 저는 그걸 제일 싫어해요. 카리스마형 리더는 그 사람의 한계가 곧 기업의 한계가 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신뢰를 악용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제가 먼저 신뢰를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신뢰가 동기부여가 되고 결국엔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다양한 의견에 대한 경청과 신뢰가 중요

 그래서 저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올바른 사람을 올바른 자리에 앉히고 두터운 신뢰 속에 함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보면 한심하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여전히 성선설을 믿고 싶네요. (웃음)

  두 번째는 불만족인데요. 사람이 한번 만족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발전이 없고 내려갈 길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살아야 하니 정신 건강에는 안 좋습니다. (웃음)

| 회장님의 이력을 보면 그야말로 덕산그룹의 성장과 경영을 위해 차근차근 걸어오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덕산그룹 회장 취임까지 회장님의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경험을 뽑아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깨달으신 점이 있다면요?

  2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많은 사건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중에 한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2014년에 매출액이 50% 급감하여 적자는 물론이고, 다수의 직원들이 퇴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 설상가상으로 새로 인수한 곳에서 폭파 사고가 발생해 원재료가 아예 공급이 안 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응급실에 실려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당시에는 극심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다시 잡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니 극복이 되더라고요.

  계약서를 작성할 때 마지막에 천재지변에 의한 조항들이 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지진, 해일과 같은 것들이요. 2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며, 천재지변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제 뒤에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면 도망치는 인생만 살게 되더라고요. 결국 핵심은 '한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위기 상황을 회피하는 것보다 극복 방법에 주목할 것

| 그렇다면, 그런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제 가족입니다. 특히 아내가 저를 잘 다룰 줄 알아요. (웃음) 아내도 고려대 동기인데, 힘든 일이 생기면 저를 위로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극합니다. 한 번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소장이 녹은 적이 있습니다. 응급 수술을 받고 아내가 3~4일을 간호를 해줬는데, 그때 처음으로 사업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아내의 첫 마디가 “아이고, 잘한다”였습니다. (웃음) 그리고 “인생 무너질 것 하나도 없다, 좀 크게 생각하고 몰입하지 말아라”라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이 상황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고 아내처럼 큰 시야로 본다면 별 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가족이 제 돌파구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 덕산그룹 회장직을 맡는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엄청난 사회적 부담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고, 현재 국제 사회의 경제 상황 역시 녹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장으로 취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요소, 정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입니다. 회사 경영이 실패하는 경우가 100개가 있다면 거의 90개는 사람 때문입니다. 또 회사 경영이 성공하는 경우가 100개가 있다면 100개 모두 사람 덕분입니다. 덕산그룹 같은 경우는 테크 기업이다 보니 미래 예측 능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미래가 올 것인지를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지 않으면 저희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느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요. 저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저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소화하고, 그것을 연계시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기업 경영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연을 하고 있는 이수훈 회장 / 사진=남지선
강연을 하고 있는 이수훈 회장 / 사진=남지선

| 역사교육과 40주년 행사 <역교 나와 함께>에서 “적층, 그 무게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 걸까요.

  “적층”이란 쉽게 말해 쌓는 것입니다. 저희 기업의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거의 모든 제품에 다 적층2)이라는 공정이 들어갑니다. 매우 얇은 두께로 적층하는데, 그 재료들이 차근차근 쌓이고 쌓여서 자기의 역할을 하나씩 하는 거죠. 저는 이 적층의 속성이 인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적층을 통해 만드는 디스플레이 패널이 불량일 경우에는 폐기하고 다시 만들면 되지만 인생은 폐기가 안 되잖아요. 하지만 인생에서는 적층 된 경험들이 다시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옵니다.

  저는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젊은 분들은 다른 분야를 도전하고 실행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이 크신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실패에 강박 관념을 가지지 않고, 어떤 경험이든 관계없이 적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넘어져 보고, 넘어지면 툴툴 털면 일어나면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안 좋은 경험들이 오히려 나중에는 큰 무게로 돌아오더라고요.

  참 민망한 이야기지만 저도 20대 때 생각했던 인생과 지금 50대가 되어 생각한 인생이 많이 다릅니다. 그때 고민하고 부끄러워했던, 지우고 싶던 과거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게 아니었거든요.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담대하게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웃음) 적층을 떠올리며 인생을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100M 달라기가 아닌 마라톤,

적층된 경험은 다시 긍정적 영향으로 돌아와

| 마지막으로 사범대학교와 교육대학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옆에 있는 학우, 교우들이 20~30년이 지났을 때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대학에서 얼굴만 알았던 친구들이 20년이 지나 예상치 못한 데서 만나고, 도움을 주고받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또 본인이 갖고 있는 편협한 시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빨리 재단하거나 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야이든 관계없이, 여러분들의 발자국이 적어도 아무도 가지 않은 어려운 길로 한 번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난관이 있더라도 그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잘 쌓아내 적층의 무게를 빛내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이수훈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를 98학번으로 입학하여 동대학 국제대학원 국제통상학과를 석사 졸업했다. 2023년 12월에는 덕산그룹(홀딩스 계열) 회장으로 취임했다. 20년간 회사를 경영하며 맞닥뜨렸던 수많은 실패를 돌이켜 보면, 인생이란 결국 모든 경험의 "적층"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실패에 대한 강박이나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1) 반도체 관련 산업  '소재, 부품, 장비' 의 줄임말

2) 접착제에 의해 둘 이상의 자재를 접합하는 공정